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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살고 싶은 동네의 조건이 있나요?

by 베짱이아재 2026.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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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활용한 이미지입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살고 싶은 동네>라는 소제목 앞에서 시선이 머물렀어요.
이사를 앞둔 저자가 본인이 살 동네의 조건들을 적어 내려간 내용이었는데,
예전과 다른 조건들이 눈에 띄었어요
예전의 저자는 예산, 통근 시간, 교통 등 현실적인 것들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마음 편히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지, 취향에 맞는 빵집이나 맛집들,
카페가 있는지를 살폈다고 해요.
그리고 실제로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동네를 찾아내 소소한 탐방을 즐기며 지낸다는 이야기였어요.

이 내용이 순간 제 마음에 쿵 하고 다가왔어요.
타인의 기준이나 효율성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일상과 행복을 중심에 두고
동네를 고르는 그 감각이 참 부러웠어요. (물론 예산에도 부합했다고 해요)

지금 당장 이사할 계획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저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는 내가 진짜 살고 싶은 동네, 살아보고 싶은 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예산이나 통근 거리, 효율적인 동선 등 빡빡한 조건들을 지우고
상상 속에서 저만의 동네 지도를 그려보기 시작했어요.

조건 1. 계절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보이는 곳.


예전의 저는 바다나 호수처럼 물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좋아했어요. 여전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4~5년 전부터는 신기하게도 나무와 숲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계절마다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는 듯한 모습에서 마음의 안정감을 많이 느꼈거든요.
특히 여름은 덥고 모기와 벌레들 때문에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었는데,
요새는 초록초록한 나뭇잎들을 보면 활력이 느껴지고 마음이 평온해져요.

물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출근길에 마주하는 가로수들이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을 보며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구나‘를 늘 체감하고 있어요.
그래서일까, 언젠가 이사를 하거나 나만의 작업실을 구하게 되면
꼭 창문 밖으로 나무들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직관적으로 바라보며 여유를 갖고 평온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현재 제 마음속에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조금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
이토록 평온함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이나믹한 풍경을 그려주는 여름이 좋아졌다.

조건 2. 근거리에 위치한 공원이나 낮은 산이 있는 곳.


사랑하는 반려견 “우디”덕분에 산책을 자주 하고 있어요. 지금은 잘 조성된 천변을 주로 걷는데,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 냄새나 흙내음 같은 자연의 재미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요.
물론 물 흐르는 소리, 다양한 새들, 초여름부터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처럼 천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들도 있지만, 무더운 여름날 그늘이 적은 것은 조금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걸어서 5~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공원과 연결된 낮은 산이 있으면 좋겠어요.
짝꿍이랑 우디와 함께 천천히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시덥지 않더라도 하루하루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을 상상해요.
물론 차를 타고 멋진 곳으로 갈 수 있지만,
날을 잡고 움직이는 이벤트보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누리는 여유가 제겐 더 중요해요.
이런 ‘의도적인 느림‘을 통해 우리 삶에 여유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라는 생각해요.

흙내음에 신난 🐶우디

조건 3. 골목마다 다정한 냄새가 배어있는 곳.


주변에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작은 빵집과 카페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깔끔하고 세련된 대형 매장도 좋지만,
화려하지 않아도 운영하는 사람의 고유한 색깔을 마주할 수 있는 곳에 왜인지 모르게 더 정이 가요.
저는 스몰 토크를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소담한 매장의 사장님들과 가벼운 안부를 주고 받는 풍경을 좋아해요.
갓 나와 고소함이 진동하는 노릇노릇한 식빵 향기, ‘위이잉~‘ 소리를 내며 내려오는 커피 향기 속에서
따스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소담한 곳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요새는 오며가며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볍게 목례를 나누는 일조차 줄어든 것 같아요.
카페나 빵집도 어쩌면 하나의 서비스업이라 기계적으로 응대할 수도 있겠지만,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곳이라 해도 간혹 밝은 미소로 맞아주는 곳을 발견하면 괜히 한 번 더 방문하고 싶어져요.
그 공간에 내재된 다정함이 제 마음을 이끌었기 때문이겠죠?

여기에 편안한 옷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나가 신선한 우유나 계란, 좋아하는 주류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동네 마트가 가깝다면 금상첨화란 생각이에요. 온라인 배송이 워낙 잘 되는 시대지만, 장바구니를 들고
직접 눈으로 보며 고르는 저만의 클래식하고 아날로그스러운 취향이 반영된 조건이죠.
그리고 살짝 욕심을 더하자면, 제가 면 음식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맛있는 국수나 우동집이 하나쯤 숨어있는 동네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여름엔 시원한 오미자에이드!

조건 4. 조용하지만 결코 어둡지 않은 분위기.


이웃들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 골목을 성실하게 비춰주는 가로등 덕분에
밤에도 무섭지 않은 곳이였으면 좋겠어요.

20대 시절, 대학로 극장 뒤 낙산공원 인근의 주택에서 아는 형들과 자취를 한 적이 있어요.
혜화역에서 나와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참 어두웠어요. 골목을 꺽어 올라갈 때마다 깜박이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맞은편에 사람이 걸어오면 괜히 등골이 서늘해졌어요.
(아마 그분들도 저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하셨겠죠?)
또 큰 도로 옆에 살았던 적도 있는데, 밤낮없는 차량 소음 때문에 저도 모르게 사람이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변하더라고요.

그런 기억들이 뇌 곳곳에 새겨져 있다 보니 ‘조용하지만 어둡지 않은 곳’을 갈망하게 되었나 봐요.
특히 저보다 제 짝꿍이나 우디가 동네를 거닐 때 조금의 불안함도 느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커요.
사랑하는 가족의 안위를 생각하는 건 당연한 마음이니까요.


네 가지 조건에 대해 적어 내려갔지만,
역시 제 마음속 0순위는 <빽빽한 나무들이 창밖에 보이는 곳>이에요.
대개 그런 곳들은 자연스럽게 조용하기 마련이니까요.

현실적인 조건들과 주거 형태를 싹 지우고 오직 살고 싶은 동네의 분위기만 생각하다보니,
미처 몰랐던 현재의 제 취향과 성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저는 평온하고 다정한 동네를 사랑하고, 계절의 틈새를 온 감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걸요.

비록 당장 이상할 수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가끔이라도 시간을 내어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분위기를 닮은 동네들을 찾아 가볍게 탐방을 떠나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아요. 직접 내 발로 그 골목들을 거닐다 보면, 훗날 진짜 이사를 가게 될 때 멋진 나침반이 되어주겠죠?
(물론 예산을 고려해야겠지만요…….)

사소하지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는 우리를 응원합니다 🥳
- 베짱이아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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